(수필) 마이클 잭슨에 대한 기억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은 없다지만 중학교 시절 나에게는 두 명의 신이 있었다.
마이클 잭슨과 스티브 잡스다.

중학생 때 마이클 잭슨의 음악 전곡을 내 아이팟에 불법다운로드해서죄송합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그의 영상을 열심히 찾아보고, 그의 춤을 따라췄던 것이 아직 생생히 기억난다.
전세계를 놀라게 했던 그의 음악과 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특훈 교육을 받아 결국에는 세계 정상에 올랐으나, 너무 어린 시절부터 스타의 인생을 살아 정작 누구에게나 지나가는 평범한 어린 시절을 살지 못해 마음만은 평생 어린아이였던 그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스토리는 그 시절 내 머리를 꽤나 강렬하게 스치고 지나갔었던 모양이다.

가물가물하긴 한데.. 2010년 슈퍼스타 K2에서 존 박이 man in the mirror을 편곡해서 부른 걸 유튜브에서 본 게 아마 그에 대한 첫 번째 기억일거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윤종신옹이 극찬을 하면서 ‘물론, 그 사람 정도는 아니지만’이라고 말했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던 나는 원곡 가수를 알아보고 싶어서 이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다.

나이도 모르겠고, 초고음 목소리로 열창하며 뭔지는 모르겠지만 노래에 들어맞는 신묘한 움직임(..)을 보이시던 흑인 뽀글머리 아저씨. 그리고 머리를 쥐어 뜯으면서 열광하던 사람들.(영상 보면 알겠지만 실제로 마이클 잭슨의 공연마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실신해서 실려나갔다)
그 후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이 짤을 보게 되었는데,

...;

제목에 '슈퍼 문워크'라고 적혀있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마이클 잭슨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문워크가 뭐징? ㅇㅅㅇ 하면서 유튜브를 찾아보다, 무슨 시퍼런 화면 안에서 새하얀 아저씨가 춤추는 것을 보고, 아항 저게 문워크구나 신기하네~ 하고 넘어갔었던 기억도 난다. (하얀 장갑과 조명 보고 마술쇼인줄 알았다) 당시에는 첫 번째 기억 속의 그 아저씨와 같은 사람인지 잘 몰랐다(..)

명불허전. 영상은 안 보더라도 문워크는 한 번 보고 가자

그렇게 지금까지 장장 8년을 이어온 덕질 생활이 시작되었다.

 

세상 살기 바빠서 아주 잠시동안 그를 잊고 지냈었다, 최근에 유튜버 루다 크리스님이 마이클 잭슨의 smooth criminal을 분석한 동영상을 보고 그에 대한 모든 기억을 다시 되짚어보게 되었다. 특히 분석해주신 1997 smooth criminal과 1995 dangerous는 정말 1000번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이 봤던 영상이라.. 한 편으로는 아직도 그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마이클 잭슨에 대한 글이라고 해서,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왜 그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엔터테이너이며, 그의 춤, 음악성과 인간성이 얼마나 위대한지, 전세계의 평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또 언론이 천사 같던 그에게 얼마나 쓰레기 같은 짓을 벌였는지 등에 대해 열변을 토할 생각은 추호에도 없다. 이미 하고 싶은 말 다 한 거 같은데? 내가 얼마나 그의 골수팬이고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굳이 증명해가며 열변을 토해봐야, 결국 싫어할 사람은 싫어하고 좋아할 사람은 좋아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빠가 까를 만든다고, 오히려 그에 대한 반감을 살 뿐.
물론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찍던 중학교 시절때는 '마이클 잭슨'이라는 우상에 얼마나 꽂혀있었던지 모른다.

얼마나 심하게 전파하고 다녔는지 학교 전체에 '마이클 잭슨을 좋아하는 아이'라고 알려졌을 정도였다. 중학교 3학년 때 smooth criminal의 영상을 노트북에 담아가 친구들에게 보여주기도 했고, 중2병 사춘기 소년답게 팬부심은 또 얼마나 강했던지, 당시 외국인 영어 선생님이 성형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마이클 잭슨이 괴상하게 나온 사진을 내보였을 때 어린 마음에 강하게 따지기도 했었다.

7년의 세월 풍화를 겪은 지금에야, 마이클 잭슨이 백인이 되면서 성형을 얼마나 많이 했니 산소튜브에 들어갔니 그런 루머를 들어도 허허허 그렇구만 ^^ 하면서 그냥 웃고 넘겨버린다.

득도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물론, 사후 진실이 드러나며 그에 대한 위상이 회복되고 단단한 팬층이 재결집해서, 굳이 내가 뭐라 말하지 않아도 팬들에게 악플러들이 융단폭격세례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루머가 얼마나 많은지 '마이클 잭슨에 대한 진실은 이렇습니다'라고 모아놓은 사이트가 있을 정도다. 이를 보며 한 편으로는, 그가 언론들로부터 얼마나 공격을 당했으면 팬들이 저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가 싶기도 하다. 지금에야 그의 이미지가 많이 회복되었고 팬 커뮤니티도 활발하지만, 타블로이드들과 불화가 한창이던 2000년대 초반에는 이미지 실추가 얼마나 심각했던지 마이클 잭슨 좋아한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정도였다고 하니 말 다했다. 팬들의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 눈에 훤하다.
중학교 때 영어과외를 받던 선생님의 아이디어로, 문워크(그의 자서전 이름) 영문판과 오프라 윈프리 인터뷰로 영어 공부를 했던 기억도 난다. 이 분이 노래에서나 발음을 뭉개시지 평소에 쓰시는 발음과 언어는 꽤나 표준적(?)이어서 공부하기엔 오히려 더 좋은 것 같다.

실제 공부했던 내용

마이클 잭슨이 인터뷰에서 펩시 광고에 대해 잠깐 언급하면 유튜브에서 실제 그가 촬영했던 펩시 광고를 찾아보고 그랬는데 당시 선생님이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교육이야!! 라고 외치시며 정말 좋아하셨었다. 교육학 전공이셨던 이 선생님은 영어 뿐 아니라 시사에도 굉장히 밝으셔서, 영어 외적으로도 이것저것 많이 배워 아직까지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레전드로 남은 who is it 비트박스 영상. 오프라 윈프리가 마이클 잭슨 특유의 추임새 'he he~'를 따라하고 마이클 잭슨이 손뼉을 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ㅋㅋㄱㅋ 이후 윈프리가 마이클 잭슨이 노래하는 걸 듣고 싶다 하니 마이클 잭슨은 잠시 부끄러워하며 고민하는데, 이를 본 윈프리가 토크쇼의 달인 답게 슬쩍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린다. (상대가 곤란해하는 걸 캐치하고 그가 편안하게 대답할 수 있는 주제로 자연스레 넘어간 걸 보자. 그녀가 왜 토크쇼의 여왕이라 불리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의 걱정은 기우였을 뿐. 그는 세계 최정상급 가수 답게 비트박스로 연주+노래를 동시에 해내는 위엄을 보여주신다. 그의 팬으로서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그가 죽기 전 조금이라도 일찍 그를 알았더라면? 하는 약간의 후회가 있다. 그가 세상 어딘가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면 그에 대한 나의 감정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가 당시에 어떤 커리어를 찍었는지,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 동시대에 살아보지 않은 이상 생생하게 느끼긴 어렵다. 오직 남아있는 기사들과 비디오를 보며 간접적으로 느낄 뿐이다.
[[마이클 잭슨에 대한 팬은 정말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나처럼) 사후 마이클 잭슨의 이미지가 회복되고 난 이후 그를 재조명하는 미디어들에 의해 유입된 사후팬층, 그리고 길게는 thriller/bad 시절부터 짧게는 2000년대 초중반에 유입된 골수팬들. 특히 몇몇 골수팬분들이 모으는 앨범이나 피규어 컬렉션을 보면 정말이지 입이 딱 벌어진다]]

Thriller가 당시 팝 시장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MTV peformance가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 그 당시에 전세계가 받았던 충격을 좀 더 생생하게 느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가수이자 엔터테이너로서 깰 수 있는 기록을 모두 깨버린 그라 할지라도, 음악 시장을 뒤흔들어놓은 그의 영향력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블로거들의 글을 읽어봤자, 오직 사후적 접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음악과 춤이 현대만큼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1980년대 사람들의 시각에서 motown 퍼포먼스를 봤을 때의 충격과, 마이클 잭슨이 판을 뒤흔들어버린 후 장족의 발전을 한 댄스와 음악&화려한 무대에 익숙해진 2000년대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motown 퍼포먼스를 볼 때의 충격은 엄연히 다르다. 마이클 잭슨이 Thriller에서 최초의 뮤직비디오를 선보이며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의 시대를 열었다고 하지만 이미 보는 음악에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나의 시각은, 그 당시의 충격을 생생하게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마이클 잭슨의 공연 영상을 보면, 거의 축제 분위기인 관객들은 정말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다. 이 양반이 공연을 그렇게 자주 섰던 것도 아니고, 전세계의 우상이지만 평생 한 번 볼 수 있을까말까한 그를 직접 무대 위에서 봤다는 건 엄청난 특권이었다. 1999년 그의 내한공연을 보며, 만약 내가 1999년에 마이클 잭슨의 팬이었다면 그의 내한공연이 나에게 어떤 느낌이었을지 상상해보곤 한다. 아마 그가 내한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TV나 공연장으로 달려가서, 잔뜩 흥분한 상태로 마이클 잭슨의 이름을 열심히 외치고 있지 않았을까? (공연 현장 당시의 팬들의 시각을 한 번 느껴보고 싶어서, 정말 드물게 나와 있는 그의 공연 직캠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의 사후에 나오는 앨범이나 Immortal tour 같은 콘텐츠를 보고도 별 감흥이 없는 이유이다. 나에겐 오직 그의 퍼포먼스, 그의 음악과 앨범이 아닌 이상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Immortal tour는 팬심에 보러 가긴 했다)

덕질하던 다른 우상이었던 스티브 잡스의 경우에는 : 그가 세상에 남기고 있던 커다란 발자취를 라이브로 생생하게 지켜봤었고, 커리어의 한창 절정을 달리고 있던 2011년, 갑자기 사망했을 때 그의 팬으로써 느꼈던 감정이 지금까지 꽤나 강렬하게 남아있어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평생의 우상이었던 세계 최고의 엔터테이너와 함께 나이가 들어가며, 아동 성추행 사건이 무죄로 판결난 이후 그의 화려한 재기를 기다리는 팬들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언론들의 공격을 뒤로하고 네버랜드에 숨어있던 그가 This is it 투어로 복귀를 선언했을 때 팬들은 얼마나 기뻐했을지, 공연 3주 전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으로 인해 전세계와 팬은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 전세계적으로 10억명이 봤다는 그의 장례식을 보며 그를 떠나보내야했던 팬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지 상상해보기도 한다.

2:55와 4:15 부분을 보자. TV로 그의 장례식을 지켜보며, Live로 전세계에 울려펴지고 있는 그의 노래를 옆 사람과 함께 따라 부르는 팬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전설적인 업적을 여럿 세우며 세상을 바꿔 놓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으로 받은 수많은 상처들을 모두 뒤로 하고, Heal the world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남기며 떠나는 마이클 잭슨을 보며 “잘가요, 마이클”을 수없이 되뇌고 있지 않았을까?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그를 조금이라도 일찍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젠 그의 새로운 퍼포먼스, 새로운 음악과 춤을 기대할 순 없다. 있는거나 열심히 우려먹으면서 덕질해야겠다 *^ 그래도 그의 음악은 들어도 들어도 절대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아마 남은 평생 난 마이클 잭슨의 음악과 함께 하지 않을까?

끝!!